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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Sebien 2012. 11. 5.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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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처음 읽은 것은 군대 시절이었다. 군시절엔 누구나 그러하듯이 군생활이 하루 이틀씩 쌓여 갈수록 군대에서의 나의 입지가 점점 강화되어 가는 반면 사회에서의 나 자신의 존재가 점점 희미해져 가는 것과 같은 괴리감을 느낀다. 휴가는 그 것을 더 강렬하게 느끼게 해주는데 처음에는 휴가라는 것이 그렇게 달콤하고 반갑기만 했지만 나중에 가면 휴가를 나올수록 점차 멀어지는 듯한 사회(혹은 주변 사람들)와 나 자신의 거리에서 오는 혼란과 휴가 이후 복귀해야하는 그 씁쓸한 감정이 휴가의 달콤함을 점점 잠식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시절 나는  그저 제목에 이끌려 이 책을 뽑아들었다.


 하지만 이제와서 이 책의 서평이 쓰여지는 것은, 그 때 당시 내가 느끼던 감정을 이 책에서 다루고 있지도 않았거니와(내가 듣고 싶었던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 아니라) 직각으로 교차하는 군인의 뇌세포가 소화하기에는 수많은 메타포들과 복잡한 철학적 사유들과 감성적 언어들이 난해하게 다가왔기 때문에 그저 주마간산 식으로 훑어서 읽고 말았던 것을 이번 가을에 왠지 축축한 글들이 읽고 싶어져 다시 이 책을 집어들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몇 마디로 어떤 책이라고 정의내리기가 매우 힘든 책이다. 내가 지하철에서 이 책을 열심히 읽고 있을 때 한 노신사분(목사님이었다.)이 다가오셔서 영혼과 육체라는 챕터 제목에 주목하시며 이게 어떤 책이냐고 물어보셨다. 근데 나는 그 때 뭐라고 설명해야할지 몰라 횡설수설하였다. 연애소설인데 존재에 대한 사유가 담겨있고 그 존재들의 이해와 몰이해 과정을 다루고 있으며 정치적인 사건과 신과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대충 이런식으로 설명했던 것 같다.


지금와서 이 책의 서평을 쓰는 중에도 사실 이 책이 어떤 책이었는지 뭐라고 말하기가 힘들다. 그저 수많은 생각할 꺼리들을 쉴새없이 쏟아내는 덤프트럭 같은 책이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소설이다. 이 소설의 주요 등장인물은 토마스, 테레사, 사비나, 프란츠 이다. 이 책은 1인칭 이면서 전지적이다. 기본적인 플롯은 1968년 소련의 체코 침공으로 촉발된 4명의 주인공들의 드라마틱한 인생의 변화를 정치적인 사건과 개인적인 사건들의 병렬적 전개로 표현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인간 존재의 가벼움과 무거움, 집단의 폭력성에 저항하는 개인의 모습, 이질성에 기반한 자아에 대한 성찰 등등을 다루고 있다.


토마스와 테레사는 서로를 누구보다도 사랑하지만 토마스의 주체할 수 없는 바람기와 테레사의 사랑에 대한 끊임없는 갈구는 둘의 인생을 더욱 불행하게 만든다. 작가는 토마스와 테레사의 사랑의 과정, 토마스의 바람기, 테레사의 불우한 어린시절 등의 요소에서 인간 존재와 자아의 특별함, 영혼과 육체의 이원성, 사랑과 집착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여인의 모습, 신을 닮은 인간의 육체에 대한 작가의 사유들을 표현한다.


사실 작가가 누구를 통해 뭐를 표현하고 누구를 통해 뭐를 표현한다는 식으로 수능 언어영역 풀듯이 도식화 하기 힘든 것은 모든 인물들이 각각의 이야기가 전개되고 또 교차하는 과정 속에서 그 인물과 사건의 고유의 상징을 통해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비슷한듯 다르게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되기 때문이다.


가령 토마스가 수많은 여자들을 만나며 그 여자들의 미묘한 이질성 속에서 쾌감을 얻는 것과 테레사의 어린시절 테레사의 어머니가 테레사가 의붓 아버지 앞에서 육체를 가리는 것을 꾸짖으며 수많은 여자들과 똑같은 육체이니 그 육체가 보여진다고 해서 결코 수치스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내뱉는 것은 육체의 특별함에 대해서 서로 상반된 이야기를 하면서 왜 인간이 특별해 지는가 왜 인간의 자아가 독립적인가 에 대한 생각할 꺼리를 던져준다.


사비나와 프란츠의 이야기에서는 연인관계의 대화가 어떻게 겉도는지 그리고 왜 그러한 겉돌음이 나타나는지 그 이해받지 못한 말들에 대한 어휘를 설명함으로서 풀어내고 있으며 프란츠를 통해 남자가 여자를 숭배할때 나타나는 형이상학적 사랑과 그 숭배와 현실이 어느정도 타협점을 이룬 형이하학적 사랑을 보여주고 인생과 행복의 의미를 성찰하며 사비나의 인생과 배신을 통해서 집단주의(키치)에 대한 거부, 인간존재의 근원적 외로움 등을 표현하고 있다. 이 역시 수많은 에피소드들과 상징들이 얽히고 섥히면서 도식화 되지 않은 그 어떤 작가의 생각들이 책 이곳 저곳에 적절하게 녹아내려 있다.


나는 이 책의 캐릭터 중에서 사비나를 가장 좋아하는데 정치사상, 대중, 인간관계 등등 곳곳에 숨어있는 전체주의적 요소(혹은 키치적인 요소)를 모두 거부하며 비판하고 조롱(?)하는 모습이 퍽 감명 깊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두 번째 독서에 와서야 어느 정도 이 책을 읽었다고 할 수 있을만큼 이해했다고 느끼지만 이러한 글로도 작가가 표현했던 어떤 생각 덩어리들을 잘 정리하며 설명하기 힘든 것은 가슴과 머리가 하는말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며 느껴졌던 가슴속의 수많은 공명들, 그 공명들과 함께 전개되는 이야기들과 주인공의 심리 변화는 매우 흥미진진하고 매력적인 요소이다. 문장이 조금 난해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 책의 상징들을 조용히 따라가며 생각을 곱씹다 보면 생각보다 금방금방 읽힌다. 물론 모든 소설의 요소들이 끈끈하게 달라붙어있기 때문에 이 것들을 하나하나 떼어서 분석하거나 이야기하기는 꽤나 어렵지만 말이다.


수많은 울림으로 채워진 책이었지만 특별히 큰 울림으로 다가왔던 몇몇 내용을 반추해보면 


- 사비나가 공산주의의 집단주의(전체주의)적 색채가 갖고있는 폭력성을 피해 스위스로 망명하였지만 스위스의 체코 피난민의 다수가 같은 구호를 외치며 함께 행동하기를 강요하는 것이 결국 집단주의 폭력성(악의 근원)은 사상을 가리지 않고 어디에나 출몰할 수있다는 것을 느끼는 장면.


- 사비나와 프란츠가 같은 어휘를 사용하지만 그들의 삶이 투영된 어휘의 의미가 달라서 대화가 결국은 겉돌게 되는 것을 표현하는 장면.


- 신을 본따 만들어졌다는 인간이 배변을 하는 것의 의미를 탐구하는 과정.


- 토마스와 테레사가 키우는 개인 카레닌이 느끼는 시간(순환하는 원)과 인간이 느끼는 시간(직선)이 달라 서로가 느끼는 행복도 다르다는 비유.


등등이 있다.


나는 왠만하면 같은 책을 두번 이상 읽는 것은 꺼려하는데 이 책은 작가가 뿌려놓은 상징들과 사유들을 천천히 음미하는 기분이 좋아서 몇번을 읽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인 밀란 쿤데라가 쓴 다른 소설들에 대한 새로운 기대감이 생긴다.


과학기술자들의 인문학적 감성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그저 과학기술자의 시각으로 읽기에는 그저 난해하고 현학적인 텍스트 덩어리로 보일지 모르지만 이 책에 담긴 시대를 관통하는 철학과 사유들은 그 인문학적 감성의 정수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어느 계층의 누가 되었든 꼭 한 번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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