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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도서] 농담

Sebien 2013. 4. 24. 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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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나 페이스북에 가끔씩 몇몇 구절을 인용하였고 몇몇 구절은 노트 받아적기도 했던 밀란 쿤데라의 농담을 드디어 완독하였다. 책을 꺼내들었던 것이 3월 말이었는데 이제야 완독하는 것은 그동안 책을 읽을 여유가 없었다는 뻔한 핑계도 있지만 소설 한구절 한구절의 울림이 너무 크게 다가왔기 때문에 - 내가 좀 호들갑 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 수월하게 읽혔다기 보단 천천히 정독하고 곱씹어보며 읽게되어서 시간이 배로 걸린듯 하다. 물론 느리게 읽힌다고 소설이 늘어진다거나 재미 없다는 뜻은 아니다.



밀란 쿤데라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고 망설임 없이 집어든 그의 첫번째 소설은 상당한 기대를 안고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상을 보여준 듯 하다. 밀란 쿤데라의 작품들은 사람의 감정, 인생, 철학적 고뇌 등을 표현함에 있어서 간결하고 아무렇지 않고 자연스럽다. 여기서 아무렇지 않다는 뜻은 그 위대하다고 까지 느껴지는 통찰들을 그냥 툭 던지듯 '아무렇지 않게' 꺼내놓는듯한 느낌이 든다는 뜻이다. 그의 통찰들이 위대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내가 살면서 막연히 느꼈던 것들, 생각했던 것들을 응축하고 구체화하여 명료하게 텍스트로 꺼내놓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주인공의 그저 한낱 농담에 불과했던 장난이 공산주의적 시대적 상황과 얽히면서 운명의 추락 - 내지는 타락 - 을 겪고 그러한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느끼는 사랑과 증오 그리고 승화의 감정을 담아내고 있다.

소설은 크게 두가지의 줄기가 있는데 하나는 공산주의 특유의 철저하게 통제된, 정치적으로 너무나도 경직된 사회에서 주인공 루드빅의 공산주의를 비하하는 단순한 농담 한마디 때문에 그의 운명이 송두리째 바뀌며 정치범으로 전락하여 온갖 고초를 겪는 과정에서 자신을 배신하고 고발한 친구 제마넥에 대한 복수와 증오를 그리는 것이고 - 또한 이 과정에서 작가는 공산주의에 대한 자신의 비판적인 시각을 여기저기서 우회적으로 표현한다 -  다른 하나는 정치범 수용소에서 루드빅과 관계하는 많은 등장인물을 통해서 다양한 인간군상의 모습을 표현하고 특히 우연히 만난 루치에라는 여인과 루드빅의 사랑을 통해 남녀간의 사랑에 대한 작가의 생각들을 드러내는 것이다.


각각의 챕터가 등장인물 들의 1인칭 시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마지막 챕터는 세 명의 등장인물의 시각을 번갈아 가면서 이야기의 절정과 결말을 묘사한다.


소설의 구성 자체가 시간의 흐름에 따르는 구성이 아니기 때문에 처음에 읽을땐 그 의미가 난해하여 다소 혼란스러울 수 있지만 마지막 챕터를 읽으면서 이전 챕터의 장면들이 오버랩되고 의미들이 명확하게 파악되기 시작하면 소설 자체의 재미도 배가 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 루드빅의 사랑과 좌절, 그리고 어떤 깨달음을 얻는 과정들을 마치 실제로 함께 체험하는 듯한 기묘한 느낌마저 받았는데, 루드빅이 루치에에 대한 자신의 사랑이 그녀 그 자체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애정과 사랑에 대한 루드빅 자신의 욕구가 투영된 일종의 허상을 사랑한 것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장면이 특히나 와닿았다.


상황, 배경, 인물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와 더불어 등장인물 자신의 입으로 자신의 심리상태와 생각들을 자세히 묘사하면서 이야기가 전개되어 장면장면이 상당히 생동감 있으며 이러한 이야기의 전개 과정에서 표출되는 갈등과 사랑의 감정에 대한, 그리고 역사와 삶과 인생에 대한 '아무렇지 않게' 툭 던져 놓는 통찰들에서 많은 깨달음과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사실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던져주는 작가의 통찰이야 말로 그저 막연하기만 했던 어떤 감정이나 인상들을 체계화할 수 있게 해주며 삶과 역사, 인생, 사랑 등 다양한 가치들을 또 다른 눈으로 볼 수 있게 해주는 매우 중요하고 핵심적인 것이며 이 소설이 그저그런 연애 소설, 혹은 흥미 위주의 소설과 구분지어질 수 있는 가장 큰 요소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통찰들을 소설적 상황과 적절히 연계하여 녹여내는 작가의 능력은 참으로 마술적이고 매혹적이다.


이러한 작가의 통찰들이 소설의 전개과정에 따라 군데군데 자연스럽게 녹여져 있으며 다루는 내용 자체가 광범위하기 때문에 몇마디 말로 이 소설은 이렇다 저렇다 표현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그저 책을 읽어보며 책 구석구석에 스며있는 통찰들을 온전히 느껴보고 자신의 삶에 대입해 보면서 자양분 삼는 것을 권하며 포스팅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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